[양승천 기자]제주 국제공항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이상을 달려 안덕면 사계리 공동묘지와 4.3 예비검속학살터로 향했다
이곳에는 4.3 사건과 6.25 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20일, 모슬포경찰서에 의해 예비검속(豫備檢束) 된 민간인들이 대정읍(大靜邑) 상모리(上摹里) 섯알오름 일제 강점기 일본군 탄약고 터(해방 후 미군에 의하여 일본군 탄약을 한 군데 모아 폭파 때 생긴 큰 구덩이)에서 경찰과 군인(해병대) 의해 집단학살되고 신원을 알 수 없이 집단 매장됐다.
6년 후인 1956년 5월 18일이 돼서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는데 132구였다. 그러나 시신의 신원을 구별할 수 없어 132개의 칠성판(七星板)에 큰 뼈를 대충 수습해 현재의 사계리 공동묘지에 이장했다. 잘 정돈된 모든 봉분에는 묘비도 어떠한 표시도 없어 노란 민들레만 피어있다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서로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百祖一孫)의 묘'라 했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 세력의 횡포로 비가 박살 나는 수난을 겪었고. 위령비는 1993년에 다시 제작한 것이며 부서진 비 조각은 1999년에 발굴하여 현 위령비 옆에 전시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