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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335] 세 분의 선교사들의 영원한 안식처 '삼성산 성지'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6-08 15: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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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훈 기자] 이곳 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곱 샤스탕 정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이들은 1836년 이래 조선에 입국해 활동하던 이국적인 외모를 감추기 위해 상복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며, 밤낮으로 험한 산길을 걸으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천주교 신도들을 찾아 복음전파에 힘썼다.






이와 함께 모방 신부는 당시 소년이었던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 최방제 프란시스코 등을 선발해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최초의 조선인 신부를 양성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에 큰 업적을 세웠다. 


한편,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세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1839년 9월 21일 사형을 당했다. 이때 앵베르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5세였다. 





이들의 유해는 20여 일 간 새남터 모래 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후에 교우들의 노력으로 노고산(지금의 서강대 뒷산)에 안정되었고, 1843년에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안장되었다.


그로부터 58년 후 1901년 박 바오로 아들 박순집 베드로의 고증으로 조선 제8대 교구장 뮈텔주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직자의 유해가 발굴되어 용산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같은 해 다시 명동성당 지하 묘지로 옮겨 지게 되었다. 



세 성직자는 1925년 7월 25일 시복되었고, 1970년 봄 오기선 산부에 의해 그동안 아무런 표식도 없이 방치되어 오던 삼성산이 세 성직자의 매장지였단 곳으로 확인됨에 따라, 같은 해 5월 12일 김수환 추기경과 노기남 대주교 및 박순집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비석을 세우고 축성식을 가지면서 삼성산 안정터는 성자로서의 최소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세 성직자가 시성의 영광에 오르자 이를 기념해 서울대교구에서 묘지 부근의 땅 1만 6천여 평을 매입, 1989년 명동성당에서 성안 유해를 일부 옮겨와 안치하고 축성식을 가졌다. 


이후 관할 본당인 삼상산상단에 의해 관리되고 있고, 세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 미사는 이들의 순교일인 매월 21일 , 주일 미사는 부활제2주일부터  연중 제34주일까지 봉헌되고 있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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