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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석 구석 334]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을 가진 '창의문'
  • 우성훈 기자
  • 등록 2024-06-07 06: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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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현판[우성훈 기자] 서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 그 사이에 4소문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난 칭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태종 13년 (14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종4년(1422)에는 군인들의 출입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광해군 9년(1617)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하여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 17년(1741)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서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문루 바같쪽으로설치된 한 쌍의 누혈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창의문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멀리 남산 타워가 보인다)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아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내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문루(門樓)는 1741년(영조 17년)에 세운 것으로, 4소문 가운데 남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진-우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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